기압·습기 떨어지고 건조한 상태에서 먹게 되는 기내식
엔진 소음, 좌석 진동이 더해져 맛에 대한 민감도 떨어져
항공사, 기내 상황 고려한 메뉴와 요리법·와인 선정 노력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식 /사진=픽사베이

무착륙 관광 비행이 인기다. 면세점 쇼핑이라는 노림수도 있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이 제한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답답함과 그리움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읽힌다. 조금 아쉬운 것은 비행이라는 설렘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기내식의 재미는 여전히 재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사실 기내식은 대단한 맛을 낸다기 보다 비행기에서 먹는다는 특수한 상황이 매력이다. 그리고 오히려 맛에는 불리한 조건에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장거리 비행을 하는 비행기는 고도 3만5000ft(약 10.6km) 정도를 유지하는데 이로 인해 지상과는 많은 것이 변한다. 우선 기압과 실내 습도가 떨어지는데 습도의 경우 그 정도가 사막보다 건조한 수준인 12% 미만까지 낮아진다. 이런 상황에 처해지면 우리의 미각과 후각은 무뎌지고 특히 짠맛과 단맛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게 된다.

2010년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Lufthansa)의 의뢰로 진행된 실험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압과 습기, 엔진 소음, 좌석 진동까지 기내와 동일하게 마련한 상황에서 신맛, 쓴맛, 매운맛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짠맛과 단맛에 대한 민감도는 약 30% 정도 떨어졌다. 중요하게 작용한 차이는 우리가 맛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80%가 사실은 냄새이고, 냄새를 맡기 위해서는 코의 점액을 증발시켜야 하는데 건조한 실내 공기로 인해 냄새 수용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음식의 맛이 배로 밋밋해진다는 것이다.

독일 국영 방송 Deutsche Welle 갈무리

비행기 엔진 소음도 여기에 한몫한다. 2010년 영국에서 발표된 연구 '배경소음이 음식 인식에 미치는 영향(Effect of background noise on food perception)'에 따르면 소음이 큰 곳에서 음식을 먹은 사람이 조용한 곳에서 음식을 먹은 사람들에 비해 짠맛, 단맛에 무딘 반응을 보였다는 결과를 얻었다. 결국 기내식을 좀 더 짜고 자극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것만으로도 매우 어렵지만 조리 조건이 매우 제한된 공간이라는 것은 이 어려움을 배가 시킨다. 당연히 요리사들은 포장과 냉장, 재가열을 거쳐도 맛을 유지할 수 있는 메뉴와 요리법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과학적인 접근도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기내식 케이터링 업체들은 요리사들에게 시뮬레이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메뉴 개발 후 항공사와 수차례 테스트를 거치며 조율한다.

맛과 향에 민감한 대표적인 음료, 와인 선정도 중요하다. 평소에 즐기던 와인이더라도 높은 고도의 비행기에서 마시게 되면 향과 바디감이 약해지고 탄닌과 신맛이 도드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와인의 경우 음식과의 조화가 중요하고 일등석·비즈니스석에 주로 제공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공사는 와인 리스트를 구성할 때 업계 최고 수준 와인 자문단의 도움을 받으며 정기적인 평가와 교체를 진행한다.

서울 마포구 AK&홍대 1층 제주항공 기내식 카페 '여행의 행복을 맛보다' /사진=뉴시스

한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항공업계지만 아이디어와 사업 다각화로 기회를 마련하려는 항공사들의 기내식 활용이 눈에 띈다. 진에어는 자사의 온라인 종합 쇼핑몰을 통해 '집에서 즐기는 기내식' 카테고리를 마련해서 실제 제공하던 기내식 세트를 판매하고 있는가 하면, 제주항공은 지난 4월 29일부터 '여행의 행복을 맛보다'라는 콘셉트로 인기 기내식을 판매하는 '기내식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홍대에 위치한 이 카페는 오는 7월 28일까지만 운영된다.

포인트경제 김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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