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성암보다 인과관계 밝히기 힘든 환경성암
미국 해병대 캠프 레조이네, TCE로 오염된 식수... 해병대와 가족들 암 집단 발병
미국 메사추세츠 우번, 아이들의 집단 백혈병...16명 사망
우번 사태 기업들, 총 6950만 달러 배상...가장 거대한 환경 정화 프로젝트
국내 9종 화학물질 배출저감계획서, 시민이 쉽게 인지 가능한 전달 필요

어느 날부터 이유도 모른 체 우리 아이와 가족, 주변 이웃들이 암에 걸려 죽는 일이 빈번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실제 존재하는 일들이다.

암 클러스터(Cancer cluster), 직업성암보다 인과관계 밝히기 힘든 환경성암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지역 사람들의 그룹에서 발생하는 암 클러스터의 사례는 역사적으로 18세기 런던의 굴뚝 청소 노동자의 음낭암, 20세기 '라듐 걸스'라고 불린 시계 다이얼 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골육종 등이 있다.

이들은 대표적인 직업성암 발병 사례로 꼽히는 역사적 사건들이다. 직업성암도 인과관계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환경성암의 사례는 직업성암보다 더 그 인과관계를 밝혀내기가 어렵다.

대표적으로 60년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이 희생된 미국의 해병대 캠프 레조이네(Lejeune)의 수질 오염 사태가 꼽힌다.

미국의 캠프 레조이네(Lejeune)의 해병대와 지도, 앰블럼 /캠프 레조이네 웹사이트

1950년대부터 노스캐롤라이나의 해병대 캠프 레조이네에서 해병대와 가족들이 트리클로로에틸렌(TCE)에 오염된 식수로 인해 해병대원들과 그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이 백혈병과 유방암에 걸려 고통받았다. 이러한 정보는 거의 20년 동안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의 오염원은 드라이클리닝 회사의 솔벤트, 화학물질을 사용한 군용 장비 청소, 지하 연료 저장 탱크의 누출 등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에 수질 조사를 통한 전문가들의 경고가 있었지만 기지에서 계속 물은 사용되었고, 1999년에 오염된 물을 섭취했을 수 있음을 해병대에서 알리기 시작했다. 장기간에 걸쳐 조사와 수많은 소송 등을 통해 2014년에 와서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수질 오염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고, 해당 해병대원들이 다른 해병대보다 모든 암 사망 위험이 약 10% 더 높다고 밝혔다.

오랜 시간 전문가들의 조사와 경고, 보고서 요청, 소송 등에도 빨리 해결하지 못한 이유는 환경성암과 오염원 간의 그 인과관계를 밝혀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뉴스앤옵저버에 따르면 1997년 독성물질·질병등록청(ATSDR)은 우물물 조사 결과 물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결론지었는데, ATSDR 조사관은 보고서 작성 시 물에 벤젠이 있다는 증거를 간과했다.

2008년 미해병대(USMC)는 이전 기지 거주자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2010년에 미국 재향군인국(VA)은 해병대 폴 버클리의 암이 캠프 레조이네에서 오염된 물 섭취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고 결정하고 그에게 장애 혜택을 주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이와 관련해 처음으로 책임을 인정한 사례로 기록됐다.

2012년에 미 상원은 퇴역한 해병대 제리 엔스밍어의 암으로 사망한 9세 딸을 기리며 '제이니 엔스밍어' 법을 통과시켰고, 오염된 물을 마시며 캠프에 살았던 퇴역 군인과 가족에게 의료혜택이 제공되었다.

미국 매사추세츠 우번, 아이들의 집단 백혈병

지난 1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특별한 영화상영과 함께 환경성암 토론회가 열렸다. 

상영된 영화는 1998년작 '시빌액션(A Civil Action)'.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1979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마을 우번(Woburn)에서 어린아이들이 집단으로 백혈병에 걸리면서 산업폐기물인 독성화학물질이 환경에 오염된 원인과 책임소재를 파헤치는 변호사 잰 슐릭만(존 트라볼타 분)과 그의 작은 법률사무소 사람들, 그리고 주민들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기업에 대항해 싸우는 이야기다.

1998년 실화바탕 영화 '시빌액션(A Civil Action)' /유튜브 '비디오키드' 영상 캡처

실제 3만7천여 명의 작은 도시 우번에 식수를 공급하는 우물 근처에서 독성 화학물질이 담긴 184개 드럼이 폐기되었고 수질 조사 결과 발암성 물질인 트라이클로로에틸렌(TCE)을 포함해 유기 화학 용제가 위험 수준으로 다량 검출되었다. 

이로 인해 지역 주민 앤 앤더슨의 3세 아들 지미를 포함해 16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 

식품포장 장비를 생산하는 그레이스 사의 공장은 장비를 세척하거나 페인트를 희석하는 데 사용하는 케미컬 솔벤트를 방출했고, 베아트리체 푸드의 피혁공장에서 가죽 제품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방출, 유니퍼스트는 섬유 세탁 과정에서 오폐수를 방출한 것으로 의심됐다. 

보스턴 글로브
(좌측상단부터 시계방향) 우번에 위치한 그레이스사의 Cryovac 포장 장비 시설, 우번 주민 도나 로빈스의 백혈병에 걸린 5세 아들 사진, 2006년에 철거된 그레이스사의 건물, 오염된 우물이 있던 자리에 시멘트 파이프 조각과 블록이 남아있는 모습 /보스턴 글로브지 갈무리

1979년 우번 지역 신문에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고 주민 모임이 결성되어 오염 조사를 벌였지만, 기업들의 사실 부인과 과학적 근거 고의 조작, 왜곡 등으로 인과관계를 밝혀내기란 어려웠다.

포기하지 않은 변호사 잰 슐릭만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결국, 1990년대가 되어서야 기업의 증거 조작이 확인되었고, 연방환경보호국(EPA)이 우번 지역의 5개 업체가 오염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결론 내렸다. 우번은 환경 정화와 피해 보상이 필요한 지역으로 선정돼 기업들이 총 6950만 달러를 배상하게 되었다. 

이는 뉴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값비싸고 거대한 환경 정화 프로젝트가 되었다.

1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환경성 암환자 찾기 국회 토론회 및 영화상영'에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조준희 팀장이 발표하고 있다. ⓒ포인트경제

1일 환경성암 토론회에서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조준희 팀장은 우번 사태는 ▲주민들이 중심이 된 환경 피해 조사, ▲전문가들의 동일 사건에 대한 이견 난립, ▲법원과 EPA 행정 처분의 차이로 환경 사고의 인과관계에 대한 해석 차이 발생 등은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촉발시켜 독성물질 저감을 결과로 이끌어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독성물질의 저감을 위해 자발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공개를 의무화해 화학물질 사용의 근본부터 줄이는 노력을 얻게 되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실제 화학물질 배출량은 지속해서 다량으로 배출되었을 것"

국내에서도 현재 9종의 화학물질에 대한 배출저감계획서를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할 수 있게 되어있다. 배출저감대상 화학물질은 ▲1,3-부타디엔(사업장수 12), ▲N,N-디메틸포름아미드(52), ▲디클로로메탄(102), ▲벤젠(23), ▲아크릴로니트릴(12), ▲염화 비닐(4), ▲클로로포름(5), ▲테트라클로로에틸렌(6), ▲트리클로로에틸렌(26) 등이다. 

디클로로메탄(dichloromethane, 또는 methylene chloride) /자료=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소(NIOSH)

이 중에 디클로로메탄(MC, Methylene Cholride)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이 물질은 무색의 달콤한 냄새가 나는 액체로 세척력이 우수한 유기용제다. 상온에서 쉽게 공기 중으로 휘발되며, 끓는점이 낮아 40℃ 이상 고온에서 쉽게 기화해 작업장 내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 환기가 불충분한 경우 작업장 내 체류할 가능성이 높아 위험하다.

디클로로메탄의 인체 침투경로와 노출 시 증상 /안전보건공단

주로 산업 용매와 세척제, 페인트 제거제, 에어로졸 살충제 제품, 사진 필름 제조 등 세척 공정에서 가공된 제품의 표면에 묻은 이물질 제거에 사용되고, PE 등의 원료를 압출·성형한 필름에 MC로 코팅하는 공정에서도 사용된다.

조준희 팀장은 우번의 사건으로 EPA가 제공한 화학물질 배출정보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포그래픽과 수요자 중심의 정보 전달 등을 이용했는데, 국내 현재 공개용 배출저감계획서에서는 정보를 쉽게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배출저감계획서에서는 현재 배출되는 물질의 양은 별도로 확인하기 어렵고 혼동하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재된 화학반응 공정 제거율이 75% 라는 것은 기존 공정 제거율 50%에 추가로 25% 제거율이 추가된 것으로 배출저감에 의한 추가 제거율은 25%다. 

EPA의 화학물질 배출정보 공개(왼쪽)와 국내 화학물질 배출저감계획서(오른쪽)/환경성 암환자 찾기 국회 토론회' 조준희 팀장 자료 발췌

그러면서 "실제 화학물질이 지역주민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대기화학물질 모니터링 자료 생산과 연계가 필요하고, 보다 적극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자체 차원에서 이러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환경성암' 다음 편은 국내 대표적인 환경성암 집단발병 사례로 '장점마을'에 대한 내용이 예정되어 있다.

포인트경제 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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