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 입법예고안은 단 17개의 화학물질만을 포함
"내년 1월 시행 앞두고, 화학적 유해인자 좁게 규정해 산재 인정 문턱 높여"
"태아 영향 미칠 수 있는 화학물질 중 단 1%만 인정하고 99% 배제한 것"
"국내 인정 생식독성, 생식세포 변이원성 물질들도 빠진 것은 대법원 판결 근거 부정"

지난해 말 임신 중 유해한 유해환경에 노출된 근로자가 선천성 장애 혹은 질병을 가진 아이를 출산할 경우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태아산재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에 '건강손상 자녀에 대한 보험급여 특례'를 신설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최저임금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박대출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방지법인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가결 처리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태아산재법은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으나 화학적 유해인자를 좁게 규정해 산재 인정 문턱을 높였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생식독성 물질과 생식세포 변이원성 물질(유전으로 돌연변이 가능성 물질)에서 서로 중복되는 화학물질과 고유번호가 없는 화학물질을 제외한 1484개 화학물질을 1차로 분류했지만, 이후 유해성이 낮은 물질, 노출 가능성이 없는 물질, 해당 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 수가 100개 미만인 물질 등을 기준으로 줄여가면서 27개의 화학물질만을 남겼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자녀의 건강손상을 일으키는 유해인자가 유산이나 사산, 조산을 일으키는 유해인자보다 적을 것을 보인다"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거나 추후 의학적으로 밝혀지는 유해인자를 포함할 수 있도록 포괄규정을 두었다"고 밝혔다.

시행령 입법예고안은 단 17개의 화학물질만을 포함했다.

태아산재법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과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만들어졌다. 2009년에 임신한 제주의료원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유산하고, 4명이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했고, 이후 역학조사를 진행한 결과 제주의료원 노동조건이 노동자의 유산과 장애아 출산에 관련이 있음이 드러났다. 주된 유해요인은 의약품 등 화학물질 노출을 포함해 환자 폭언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교대근무 등으로 인한 신체적 부담 등이었다.

2019년 4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임신 중 여성노동자 업무에 기인한 태아 건강손상 산업재해 인정을 위한 위헙법률심판제청신청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특히 이들은 미국식품의약국(FDA)가 임산부와 태아에 유해하다고 규정된 약물들을 매일 보호장구도 없이 취급 주의사항조차 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채 환기시설이 없는 곳에서 약 분쇄 작업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지난달 28일 '제대로 된 태아산재법 시행령 촉구' 기자회견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것은 태아산재법 시행령이 아니라 무력화 시행령"이라고 비판했다.

"태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화학물질 중 단 1%만을 인정하고 99%를 배제한 것이다"

의학적으로 분명하게 밝혀지기는 매우 어려운 태아산재를 연구가 별로 없어서 17개만 선정했다고 변명하는 고용노동부는 너무 엄격한 기준을 선택해서 시행령이 협소해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

애초에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물질이라면, 생식독성 물질, 생식세포 변이원성 물질이라고 분류하고 관리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위험해서 관리하고 예방은 하는데 보상은 하지 않는다면 이는 '난센스'라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현재의 협소한 시행령안을 폐기하고,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화학물질을 포함하는 시행령을 제정해야 한다"

지난 2월 태아산재법 제정 의미와 과제 토론회 /사진=반올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이향춘 본부장은 "10년 동안 투쟁해 2020년에야 대법원 판결이 났고, 이후 1년 반이 지나서야 태아산재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지난 10월 시행령을 입법예고했지만, 국내에서 인정하는 생식독성, 생식세포 변이원성 물질들도 빠져버린 것은 대법원 판결의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사들의 생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직업 관련 요인에는 마취가스, 항암제, 유기용제 및 소독제, 방사선, 육체적으로 과중한 업무, 과도한 업무와 조직 간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병원 내 감염, 교대근무 등이 있지만, 시행령에는 이러한 유해요인이 포함되지 않는다.

새로운 화학물질은 계속해서 나오고 그 유해성을 검증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또한 태아의 건강손상 산재판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극소수의 유해요인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태아의 건강손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다양한 유해요인들에 대해 폭넓게 규정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는 노동자가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보장해야만 한다.

포인트경제 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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