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케첩을 표방하며 탄생했던 '서 켄싱턴 케첩(Sir Kensington’s Ketchup)'
고급화 전략과 스토리텔링으로 하인즈를 위협하기도
경제성, 매각에 따른 결정권 부재, 마요네즈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

한때 세계 케첩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하인즈(Kraft Heinz)를 긴장시켰던 '서 켄싱턴 케첩(Sir Kensington’s Ketchup, 이하 켄싱턴 케첩)'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지난달 켄싱턴의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클래식 케첩과 스파이시 케첩의 은퇴를 알리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켄싱턴 케첩의 단종을 알리는 게시물 / 서 켄싱턴 인스타그램 갈무리
켄싱턴 케첩의 단종을 알리는 게시물 / 서 켄싱턴 인스타그램 갈무리

켄싱턴 케첩은 지난 2010년 브라운대학교를 막 졸업한 스콧 노튼(Scott Norton)과 마크 라마단(Mark Ramadan)이 탄생시킨 케첩이다. 경제학과 재학 시절 하인즈가 장악하고 있는 케첩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케첩 개발은 졸업 이후까지 이어졌고 하인즈와 다른 케첩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들이 내세운 컨셉은 '건강한 케첩'이다. 일반적인 케첩에 들어가는 가공식품첨가물과 GMO(유전자조작 농산물), 인공 색소를 빼고 토마토·비정제 설탕·사과식초·올리브오일 등 자연재료만으로 만들었다. 더욱이 하인즈 케첩보다 설탕 50%·나트륨 33%를 줄였고, 소스라는 보조적인 개념에 머물지 않고 케첩 자체의 맛에도 신경을 썼다.

건강한 케첩에 어울리고 고급스러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플라스틱 용기 대신 유리병 용기를 선택한 점도 주목받았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짜서 쓰는 케첩 대신에 유리병에서 퍼내는 케첩으로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 어울린다는 고급화 전략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름은 물론 케첩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 '켄싱턴 경(Sir Kensington)'은 상품의 스토리텔링을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영국 무역상 집안에서 태어난 옥스퍼드대학교 출신으로, 영국 여왕의 명을 받아 동인도 회사에서 향료 관련 일을 하며 미식가들과 교류하는 인물이라는 설정이다. 어느 날 러시아 캐서린 대제로부터 케첩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만들어낸 케첩이 너무 맛있어서 '케첩의 왕'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것이 주요 스토리다.

켄싱턴 제품군 / 서 켄싱턴 홈페이지 갈무리
켄싱턴 제품군 / 서 켄싱턴 홈페이지 갈무리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켄싱턴 케첩은 미국 유기농 식품 매장인 홀푸드에서 하인즈 케첩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017년 다국적기업 유니레버(Unilever)는 건강한 케첩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켄싱턴을 1억 4000만 달러(당시 환율 약 1700억 원)에 인수했다.

그런데 이런 성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켄싱턴 케첩의 단종이 결정됐다. 이에 대해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노튼은 낮은 마진과 회사의 매각, 마요네즈에 대한 집중을 꼽는다.

식품은 저마진 사업인데 지난 3년간의 팬데믹과 전쟁,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격과 비용 압박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유니레버에 판매가 된 만큼 제품의 출시와 유지, 퇴출의 결정권도 함께 넘어갔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단종은 켄싱턴 케첩보다 더 인기가 많아진 마요네즈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기도 하다. 이들이 10년 전에 출시한 마요네즈가 켄싱턴 사업의 75%로 성장한 반면 케첩은 약 10%로 떨어진 상황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포인트경제 송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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