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이 제기한 맨체스터 지역의 노예제도 관련성 문제
맨체스터 연고지로 하는 축구팀 엠블럼 속 범선 문제로 이어져
인디언 관련 로고와 팀명을 바꾼 MLB 클리블랜드팀과 NFL 워싱턴 팀
팀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엠블럼과 로고.. 시대와 역사 인식 변화에서 벗어날 수 없어

지난 3월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가디언의 소유자는 설립자들이 대서양 횡단 노예 거래에 연관된 것에 대해 사과한다(Guardian owner apologises for founders’ links to transatlantic slavery)'라는 특집 기사를 실어 화제가 됐다. 현재 가디언을 소유한 미디어 기업 '스콧 트러스트(Scott Trust Limited)'가 발표한 조사 보고서(Scott Trust Legacies of Enslavement, 스콧 트러스트 노예화의 유산)를 바탕으로 한 이 기사에서 가디언의 창립자 존 에드워드 테일러(John Edward Taylor)가 대서양 노예 무역과 관련되어 있었던 것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가디언은 1821년 맨체스터에서 〈맨체스터 가디언〉으로 시작됐다. 당시 맨체스터는 산업혁명의 중심지이자 면화 교역이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면화는 주로 아프리카 대륙과 서인도제도에서 수입했는데 이는 대부분 식민지 노예들이 경작한 결과물이었다. 문제는 창립자 테일러와 그의 후원자 11명 중 적어도 9명이 노예제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예제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는 노예 노동을 사용하는 회사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거나, 식민지 농장을 운영하고 노예를 소유하는데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가디언의 탄생에 노예 제도의 자금이 활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이러한 이해관계가 가디언의 논조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의심이 맞물려 사과에 나선 것이다.

가디언의 스페셜 시리즈 '면화 자본 - 노예 제도가 가디언, 영국, 세계를 어떻게 변화 시켰는가' / 가디언 갈무리
가디언의 스페셜 시리즈 '면화 자본 - 노예 제도가 가디언, 영국, 세계를 어떻게 변화 시켰는가' / 가디언 갈무리

현재 가디언은 '면화 자본 - 노예 제도가 가디언, 영국, 세계를 어떻게 변화 시켰는가(COTTON CAPITAL - How slavery changed the Guardian, Britain and the world)'라는 시리즈를 통해 맨체스터와 노예 제도에 대한 다양한 기사를 스페셜 시리즈로 게재해 놓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가디언의 이와 같은 문제 제기가 프리미어리그 축구팀의 엠블럼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지난주 FA컵 결승전을 치른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두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엠블럼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배에 관한 지적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엠블럼  / 스카이스포츠 갈무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의 엠블럼 / 스카이스포츠 갈무리

맨유와 맨시티의 엠블럼에는 대형 범선이 들어가 있는데 그동안은 항구도시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가디언의 기사가 주목을 받으면서 이 배가 노예 무역을 상징하는 측면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엠블럼에서 배를 빼야 한다는 목소리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물론 반론의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그레이엄 스트링거(Graham Stringer) 의원과 시의회는 배는 '자유무역'을 상징하고 기념하는 것이라는 입장이고, 구단들은 논평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득 미국 메이저리그(MLB) 클리블랜드팀이 2019년 로고를, 2021년에는 팀명을 바꾼 것이 떠오른다. 과거 인디언 출신 선수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인디언들을 몰아냈던 역사를 볼 때 인디언 추장(Chief Wahoo, 와후 추장)을 로고로 쓴다는 것은 희화화하는 것이라는 여론이 높아진 것이 변경의 배경이다. 현재 팀의 로고는 'C'이며, 팀명은 '인디언스'가 아닌 '가디언스'가 사용되고 있다.

(왼쪽)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로고 와후 추장 (가운데) 전광판 인디언스 로고 철거 (오른쪽) 새로운 이름 가디언스 발표 / 뉴시스 갈무리
(왼쪽)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로고 와후 추장 (가운데) 전광판 인디언스 로고 철거 (오른쪽) 새로운 이름 가디언스 발표 / 뉴시스 갈무리

미국 프로미식축구리그(NFL) 워싱턴 '커맨더스'도 마찬가지다. 과거 '레드스킨스'라는 팀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피부색이 빨갛다는 뜻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지적과 항의가 이어졌고 후원사에 대한 압박도 높아졌다. 결국 팀은 2020년 팀명을 없애고, 2022년부터 커맨더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인디언 옆모습을 쓰던 로고도 사라졌다.

프로팀의 엠블럼과 로고는 그야말로 팀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표식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와 의미가 높아지는 만큼 변경도 쉽지 않다. 다만 시대와 역사 인식이라는 더 큰 범위의 변화에서는 벗어날 수는 없다. 연고지를 바탕으로 백 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이루고 있는 팀들이 늘어나며 마주하게 되는 새로운 그리고 책임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포인트경제 송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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